민영환 vs 민영휘

오늘 남이섬에서 MB가 어쩌구 저쩌구 떠든 기사를 보다가 기사 댓글에 어느분이 남이섬은 민영환의 손자가 경영하는 회사라고 친일파 어쩌구 하는 댓글을 살짝보았다.
이분이 이름이 비슷하니 헷갈리신 모양인데, 바로 잡자면 민영환이 아니고 민영휘다. 민영휘가 역적이고, 민영환은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자결한 충신이였다.

둘다 구한말 정부 고위직 관리를 역힘했다. 명성황후하고는 친척이고..

먼저 친일인사인 민영휘를 위키에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민영휘는 경제에 밝아 쉽게 갑부가 되었다. 관직에 있을 때 수탈한 재물을 이후에 잘 불려,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 최고의 갑부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귀족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대자본가로 변신에 성공한 경우로, ‘권력형 부정축재’로 분류된다"

본받지 말아야할 놈이다..

반대로 민영환은
1897년 유럽 6개국 특명전권대사, 탁지부 대신, 장례원경, 표훈원 총재등 역임하면서 주요 관료로 겸임한다. 또한 대한제국 반포하기 이전의 여러공적들 덕분에, 추후에 태극장(太極章)을 수여받았다.
1896년 독립협회를 적극 후원하였고, 보다 근대적인 개혁을 시도할려다가 수구세력인 민씨일파에게 반감과 미움을 사게되어 요직에서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참정대신(參政大臣)등을 지내고, 훈1등(勳一等)과 태극장(太極章)을 받았다.
민영환은 친일적인 대신,관료들과 수차례 대립하였고, 일본제국의 내정간섭을 성토하다가 주요요직에서 밀려나게 된다.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을 크게 개탄하며, 조병세와 같이 을사조약 반대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일제 헌병들의 강제진압에 의해 실패하게되고,〈대한 이천만 동포에게 남기는 글〉을 국민들에게 남기고 자결하였다.


〈대한 이천만 동포에게 남기는 글>

아,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에서 잔멸하리라.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살 수 있는 법인데, 여러분은 왜 이것을 모르는가.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과하노라. 영환은 죽어도 죽지않고, 저승에서 여러분을 돕고자 하니 우리 2천만 동포 형제들은 천만배로 보답하여 마음을 굳게먹고, 학문에 힘쓰며, 일심협력하여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몸도 저승에서 기뻐 웃으리라. 아, 실망하지 말라. 우리 대한 제국 2천만 동포형제에게 이별을 고하노라


자~ 헷갈리시지 말길.. 죽은 영혼이 억울해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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